SK이노, LG화학 상대 ‘특허침해 소송’ 채비
‘제2의 반도체’로 불리는 2차전지 관련 소송전이 확산되고 있다. 국내 재계 순위 3, 4위인 SK그룹과 LG그룹이 정면으로 맞붙는 모양새다. 지난 4월 LG가 ‘영업비밀 침해’ 혐의로 SK를 제소하고 SK가 ‘채무부존재(영업비밀 침해 없음) 확인’ 맞소송을 내면서 한 차례 맞붙었던 양측은 이달 말 LG에 대한 SK의 ‘특허침해’ 제소로 다시 한번 충돌한다.
업계에서는 미·중 무역갈등, 일본의 대한국 무역보복 등 국가경제가 극도로 불투명한 상황에서 초우량 기업들이 막대한 법률비용을 치러가며 소송전을 펼치는 데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을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하기로 결정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시기는 빠르면 이달 안”이라며 “사안 속성상 미국에서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번 소송은 지난 LG측 소송에 대한 맞대응이 아니다”며 “특허침해로 인한 피해가 커서 시작하는 별개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사안은 별개이지만 결국엔 맞대응하는 것”이라며 “소송 규모는 막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SK는 권리 침해 내역을 꽤 구체적으로 특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빠른 시간 안에 효과를 극대화할 핀셋형 타격을 준비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LG의 경우 연구개발은 물론 생산, 품질, 구매, 영업 등 전 직군에 대한 SK의 인력유출(76명) 혐의를 문제삼았다. 이에 미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침해당한 영업비밀을 특정하라’고 명령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사건은 증거 개시 절차가 시작돼 양측이 산업통상자원부 허가를 거쳐 자료를 제출하고 있으며 예비판결은 내년 6월, 최종판결은 10월로 각각 확정됐다.
이번 제소는 예견된 수순이다. SK이노베이션은 4∼6월 소송 단계마다 “고객, 구성원, 사업가치, 산업생태계, 국익 등 5가지 보호가 시급하다”며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해 대응할 것”이라고 밝혀 왔다. 업계 관계자는 “‘시급하다’면서도 넉 달간 잠잠했던 것은 물밑대화와 중재 시도가 다양하게 진행됐고 한·일 갈등 이슈까지 불거진 영향”이라고 말했다.
최근 SK가 화해 제스처로 해석될 만한 메시지를 내면서 대화의 모멘텀이 될지 관심을 끌기도 했다. ‘경쟁사가 원하면 분리막(LiBS)을 공급할 수 있다’는 SK측 언급이 나오면서다. 분리막은 배터리 4대 핵심소재 중 하나로, SK는 독자 생산 중이며 LG는 일본산을 쓰고 있다. 그런데 LG 입장은 시종 강경했고 이에 SK도 강공으로 선회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은 양측 총수가 미래 먹거리로 공언해온 영역이다. 산업이 아직은 초기이고 단기간 내 고속성장이 전망되면서 한·중·일의 국가 대항전이 펼쳐지는 상황이다. 작년만 해도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3사는 차세대 배터리 핵심기술 개발을 위해 손을 잡기로 하고 1000억원 규모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 소송전으로 협력 분위기는 실종됐다. 소송 결과에 따라서는 어느 한 쪽의 미국시장 영업이 중단되는 사태로 치달을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두 기업 간 골이 깊어 당분간은 협력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며 “중국·일본 업체가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현일 기자 con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