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산의마음을여는시] 추석 지나 저녁 때

실향민인 아버지는 추석이나 설 때가 되면 어린 저를 데리고 임진각으로 가셔서 날 저물 때까지 북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돌아오시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6·25전쟁이 났을 때 고향에 계신 부모를 모셔오지 못한 것을 평생 후회하고 사셨습니다. 많은 실향민처럼 아버지는 남북이 이리 긴 시간 갈라질 줄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아버지에게도 저처럼 할머니 할아버지, 젊은 어머니, 젊은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그때는 그가 바라보는 흰 구름은 눈부셨을 테고

풀잎에 부서지는 바람은 속살이 파랗게 떨리기도 했을 겁니다.

아버지 가시고 어머니도 가시고 추석도 지났습니다.

저문 나이가 된 저는 오늘 동생 집 추녀 밑에 주저앉아

세상에서 가장 멋졌던 당신과 둥근달처럼 예쁘고 젊었던 엄마를 떠올려 보렵니다.   

달이 떠오를 때까지,

박미산 시인, 그림=원은희

허블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