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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폴 "공사장 소음·미생물 소리도 음악이 되죠"



두 번째 앰비언트 음반 발표…"청각적 자극에 집중하는 경험 재미있을 것"


(서울=연합뉴스) 최재서 기자 = 제주의 한 마을은 '꿩이 사는 마을'이라 불릴 정도로 사람 없는 동네였다. 그곳에 타운하우스가 하나둘 들어서더니 1년 365일 땅 파고 쇠 자르는 소리가 들렸다.
루시드폴은 그게 괴로워서 일단 녹음기를 켰다. 포크레인·그라인더 소리, 철근 떨어지는 소리…그는 채집한 소리를 잘게 자르고 섞었다. 같은 작업을 반복하면서 소리의 원형은 사라졌다.
"듣기 싫은 소리를 듣고 싶은 음악으로 만들면서 위로받고 싶었달까요?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앰비언트(ambient) 연주 음반 '빙-위드'(Being-with) 발매를 기념해 최근 서울 중구 한 갤러리에서 만난 루시드폴은 타이틀곡 '마테르 돌로로사'(Mater Dolorosa)를 소개하며 잔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루시드폴은 "어차피 제가 살고 있는 집도 공사장에서 만들어졌으니 조심스럽긴 하다"면서도 "이런 제작 과정을 설명하고 발표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새 음반 '빙-위드'에는 타이틀곡을 포함해 총 5곡이 담겼다. 지난 2021년 발표한 '댄싱 위드 워터'(Dancing With Water) 이후 두 번째로 선보이는 앰비언트 음반이다. 앰비언트는 전자 음악의 한 종류로 주로 반복적이면서도 공감각적인 연주 음악을 뜻한다.
수록곡들은 다소 생소한 작곡 기법과 최장 1시간에 이르는 노래 길이에 뒷걸음질 쳐지다가도 일단 곡이 흐르면 차분히 귀를 기울이게 되는 매력을 지녔다. 루시드폴은 이 음악을 '소리 향초'에 빗대며 귀에 거슬리지 않고 퍼져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공사장 소리는 사실 퀄리티가 좋지 않아서 듣기 좋게 만드는 일이 너무 어려웠다"며 "5곡의 사운드스케이프(소리풍경)가 너무 달랐고, 제가 욕심도 많이 냈다"고 털어놨다.

특히 수록곡 '미크로코즈모'(Microcosmo) 작업 과정을 들어보면 그의 공학자다운 섬세함과 까다로운 취향이 엿보인다. 그가 작업 과정을 "고통스럽게 재미있었다"고 돌아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하게, 릴 테이프(릴을 감아서 사용하는 녹음테이프)를 일일이 면도칼로 잘라 끝과 끝을 붙여서 아날로그 루프를 만들었어요. 40~50년 전 미니멀리즘 음악 하시던 분들이 그런 방식을 많이 썼다고 하더라고요."
그는 이렇게 만들어낸 소리 위에 바스락바스락 미생물이 발효하는 소리를 얹었다. "40도에서 열흘 정도 발효시키면 미생물이 번식하면서 소리를 내는데 굉장히 음악적이에요."
이 밖에도 오일장을 다니며 채집한 사람들의 소리, 물속에 수중마이크를 들이밀어 얻어낸 소리 등이 이 곡에 담겼다.

루시드폴은 앞으로도 꾸준히 앰비언트 음악에 손을 대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요즘 워낙 시각적 자극이 강한 세상이지만, 한 번쯤은 청각적 자극에 집중해 이런저런 소리를 경험하면 재미있을 것"이라며 "그런 소리를 만들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싱어송라이터로 음악을 시작했지만, 소리에 집중하는 음악을 만들고 들려주고 싶은 자아가 분명히 생겼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루시드폴은 오는 16~17일 소속사 안테나의 기획공연 '클럽 아크'에서 신곡 무대와 함께 그의 신간 '모두가 듣는다' 북토크를 선보일 예정이다.
'모두가 듣는다'는 루시드폴이 6년 만에 내놓는 에세이로 '빙-위드'의 라이너 노트(곡 해설문)도 실려 있다. 루시드폴이 전문을 낭송한 오디오북도 나온다.
acui7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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